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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ma 업, 業

사보 - 청룡

 

 

  마을의 어귀를 지나 해가 뜨는 방향으로 곧장 걷다보면 입구부터 수풀이 우거진 언덕이 나온다.

사실 경사가 제법 진 그 곳은 언덕보다는 산이라 부르는 게 훨씬 어울릴 만큼 오르는 길이 험하다.

 그 험한 길을 한참 오르다 보면 어느새 물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곳이 보이는데, 그걸 보고설 수 있는 언덕 아래엔 누군가 깎아낸 듯한 바위절벽이 해풍과 파도를 견디며 그 언덕을 지키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 곳을 절벽언덕이라고 부른다. 오르는 길목부터가 그렇게 험하면서도 그게 왜 산이 아니라 언덕인지, 왜 하필 이름이 절벽언덕인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위에서 볼 수 있는, 물이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이다. 그저 지나는 길에 들리는 이방인들조차 험한 언덕길을 마다 않고 오르는 이유는 다 그 때문이었다.

 물론 마을에서 한참을 돌아가야 있는 모래사장에서도 절벽의 자태는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지만 사람들은 모래사장에서의 편한 감상보다는 수풀이 무성한 언덕길을 오르길 고집했다.

 그건 다 오래전부터 그 절벽언덕을 끼고 있는 마을에 내려오던 전설 때문이기도 했다.

 나미가 나고 자란 그 마을은 한 해에 두어 번, 절벽언덕 위에서 신수를 위한 제를 지낸다. 바다 옆 작은 마을이 올해도 무탈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해달라는 바람을 담아 절벽 끝에 제단을 차리고 무운을 기도한다. 그 날이면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그 언덕에 오른다. 각자의 안위와 평안을 위한 기도이지만 그 바람의 간절함은 모두 같은지 누구하나 빠지는 사람이 없었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나미는 꽤나 험한 언덕길을 오를 수 없어서 늘 모래사장에 앉아 그 곳을 보곤 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언덕으로 가면 혼자가 되는 나미를 그냥 두고 갈 수 없는 노지코 역시 나미와 함께 모래사장에서 그 언덕 위를 바라봤다.

 한해에 고작 두어 번. 마을 사람들이 기도제를 위해 모두 집을 비우고 언덕을 오르면 나미는 노지코의 손을 잡고 마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모래사장까지 걸어갔다.

 모래사장으로 가는 길은 편하긴 해도 언덕길보단 멀다. 그래서 매번 나미가 모래사장에 도착할 때면 절벽언덕 위는 마을 사람들이 손에 쥐고 간 횃불로 인해 대낮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자면 나미는 왜인지 속이 뒤집히는 것만 같았다. 불빛이 아른대는 언덕 위를 보면서 나미는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용왕님 따위가 무어라고 저 난리냐며 투덜거렸다. 그때마다 노지코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라며 펄쩍 뛰곤 했다.

 사실 나미가 매번 그런 말을 했던 건 어리다며 저만 쏙 빼놓고 가버린 어른들에 대한 서운함과 언덕을 오를 수 있음에도 저 때문에 남아있는 노지코에게 미안해서였다. 나미는 그만큼 어렸다. 미안함과 서운함을 곱게 표현하지 못하는 나이가 딱 나미의 나이였다.

 

“ 용왕님이 들으시면 경을 치실거야.”

 

 노지코가 단호하게 말하자 단단히 심술이 난 나미가 기어이 고운 모래바닥을 발로 퍽퍽 찬다.

“ 해볼 테면 해보라지. 나는 용왕님 같은 거 하나도 안 무서워! 무섭지도 않고 믿지도 않아! 있다 해도 싫어할 거야!”

 “ 얘가 정말!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래도!”

 단단히 뿔이 난 나미의 한마디에 펄쩍 뛴 노지코가 기어이 나미의 등짝을 찰싹 소리 나게 친다. 그러고는 모래사장에 퍼질러 앉은 나미의 옆에 쪼그려 앉는다.

 “ 할머니가 그랬어. 마을 사람들이 일 년을 무사히 보내는 건 다 용왕님이 돌봐주셔서 그런 거라고. 그러니까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아직 어린 나미에게 그보다 조금 덜 어린 노지코가 타이르듯 말한다. 하지만 그런 얘기 따위 귀 기울여 들을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는 나미는 씩씩대며 애꿎은 모래바닥만 발로 찼다. 그러다가 심경에 무슨 변화라도 있는지 돌연 풀이 죽은 표정으로 팔다리를 축 늘어트린다.

 그러고는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있더니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얼굴로 입을 뗀다.

“ 그치만, 우리 엄마는 죽었잖아.”

“ ......”

“ 다른 사람들은 다 돌봐주면서 우리 엄마만 안 돌봐줬잖아.”

그 말엔 도무지 답해줄 말이 생각나지 않는지 노지코는 한숨을 내쉬더니 아예 고갤 돌려버린다.

“ 진짜 용왕님이 있다면 엄마가 그렇게 되게끔 내버려두진 않았을 거야.”

또박또박 말하는 나미의 말에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 생각한 노지코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또 다시 한숨만 내쉬었다.

 

 나미와 노지코의 엄마가 결국 단명을 한 건 불과 일 년 전의 일이다. 절벽언덕. 용왕님이 돌봐주시어 일 년에 두어번 빠짐없이 제를 올리는 그 언덕은 지금보다 더 어렸던 나미의 엄마가 죽은 곳이기도 했다.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마을 사람은 아무래도 절벽 아래로 추락한 게 아닐까 라고 추측했다.

 슬퍼하는 것보다 더 큰 슬픔에 잠긴 두 자매에게 마을 어른들은 용왕님 곁으로 간 거라며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했었다. 그래서인지 노지코는 의외로 엄마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미는 아니었다. 그런 이야기를 더 믿을 법한 나이였음에도 나미는 그 얘기를 먼지만큼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 그러니까 난 용왕님 따위 안 믿어.”

 그렇게 말한 나미는 언제 풀이 죽었냐는 듯 자못 결연한 표정으로 절벽언덕 위를 올려다본다. 언덕 위는 아직 불빛들로 훤하다. 아마도 저 불빛들은 용왕님께 드리는 기도가 끝나야 사그라들 것이다. 그리고 기도가 끝나는 건 언제나 그랬듯 미명이 터오는 새벽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새벽이 다 지나서야 언덕에서 내려왔다. 밤새 이어진 기도제 때문인지 지친 얼굴을 하고서 돌아온 그들은 누가 뭐랄 것 없이 각자 제 집을 찾아 들어갔다. 고요했던 마을이 아주 잠깐 소란스러워지는가 싶더니 금세 조용해진다. 다들 쌩 눈으로 밤을 꼴딱 새웠으니 아마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는 누구도 제집 밖으론 나오지 않을 거였다. 그건 언덕에 오르지 않았던 나미와 노지코도 매한가지였다.

 해가 중천에 걸려도 눈뜰 생각 없이 곤히 자던 노지코가 몸을 몇 번 뒤척이다 말곤 별안간 눈을 번쩍 뜬다. 뜬 눈을 몇 번 껌뻑이던 노지코가 이번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더니 방을 두리번거린다. 허전함에 저도 모르게 눈을 떴는데, 제 옆에서 자고 있어야 할 나미가 보이질 않는다. 놀란 노지코가 이번엔 문을 벌컥 열고 방을 나가더니 밖을 두리번거린다. 아직 누구도 잠에서 깨지 않았는지 마을은 검푸른 새벽처럼 온 사방이 고요하다.

 엄마가 떠난 이후로 날이 좋든 좋지 않든, 밤이든 낮이든 가릴 것 없이 서로에게 의지하던 자매였다. 일 년 전 그 날부터 나미는 노지코의 옆이 아니면 잠들지도 못했었다. 잠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잘 자다 가도 노지코가 먼저 잠에서 깨면 졸린 눈을 부비며 따라 일어나던 게 나미였다. 그런 나미가 보이질 않는다.

 마당 한가운데 멍하게 서있던 노지코가 다시 방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방 한 켠, 좀 전까지 제가 누워있던 자리 바로 옆에는 온기 따위 느껴지지 않는 나미의 이부자리가 그대로 놓여있다. 노지코는 온 집안을 뒤졌다. 그래봤자 손바닥만한 집이다. 인기척이라곤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미가 사라졌다. 모두가 잠든 사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그제야 얼굴이 사색이 된 노지코가 이번엔 아예 마당 밖으로 뛰쳐나간다. 얼마나 급했는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을 향해 뛰어간다.

 

 

 

 

 

 

 아찔한 절벽 끝에 겁도 없이 앉아있던 나미가 바닥에 널린 조막만한 돌멩이를 절벽 아래로 던진다. 떨어진 돌멩이가 파도에 소리도 없이 모양을 감추자 좀 전과 비슷한 크기의 돌을 집은 나미가 다시 절벽 아래로 돌멩이를 던진다. 그러고 있은지 벌써 두시진이나 지났다. 해가 중천에 걸리기 전에 마을을 나섰는데, 험한 언덕길을 다 올라서 보니 해는 중천에 걸린 지 한참이나 지난 뒤였다. 그리고 절벽언덕 끄트머리에 앉아 하릴없이 돌멩이만 던지기를 두시진. 해는 이미 판판한 수평선에 닿을 듯 가까워져 있었다.

 “ 용왕님 같은 소리하네.”

 뭐에 그렇게 뿔이 났는지 혼자 씩씩대며 비아냥을 한 움큼 뱉어낸 나미가 이번엔 제 두 주먹보다도 더 큰 돌덩일 절벽 아래로 휙 떨어트린다.

“ 이거나 맞아라!”

그래놓고선 힐끔 절벽 아래를 내려다본다. 제법 무게가 나가는 돌덩인지라 말해놓고도 괜히 찝찝한 나미가 아래를 내려 보다 말곤 돌연 절벽 끝에 내 놓은 두 다리를 방방 구른다. 두 손으로 들만큼 무게가 나가던 돌덩인지라 암초에 부딪쳐 퍽 소리라도 날 줄 알았더니 소리는커녕 어느새 몰려온 파도가 떨어지는 돌덩이를 소리도 없이 삼켜버렸다.

  “ 용왕님이고 나발이고 실뱀 한 마리도 안 보이는데 무슨!”

그러니까 나미가 마을 사람들 몰래 이 험한 절벽언덕에 온 이유는 그 잘난 용왕님을 보기 위해다.

 밤새 신단에 음식을 차려뒀으니 진짜 용왕님이 있다면 사람들이 언덕을 다 내려간 후에 찾아오겠지, 라고 생각한 나미가 기어이 해가 중천에 뜨기도 전에 몰래 마을을 빠져 나온 거다. 진짜 용왕님이 있다면, 용왕님을 만난다면 단단히 따져 물을 말까지 생각하며 험한 언덕길을 부지런히 오른 나미는 절벽언덕의 정상에 올라서야 주저앉고 말았다.

 신단에 차려졌던 음식은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듯 멀끔하기만 했다. 그것만 봐도 절벽언덕엔 짐승 한 마리조차 다녀가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미는 역시나 하는 허탈감과 함께 혹여나 제가 이르게 찾아온 건 아닐까란 모호한 희망이 들어 그 길로 아예 절벽 끝에 걸터앉았다. 그게 벌써 두시진 전의 일이었다.

 해가 기어이 수평선을 넘어 조금씩 모습을 감추자 나미는 짜증이 났다.

“ 이것 봐.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우왁스럽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나미가 마지막으로 바닥에 주어다 두었던 짱돌을 발로 힘껏 찬다. 그러자 발에 채어 절벽 아래로 뚝 떨어진 조막만한 돌은 금세 파도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바다는 간간히 파도가 되어 절벽 아래에 철썩이며 부딪칠 뿐 여전히 잠잠하다.

 마을 사람들이 늘 떠받들어 말하던 용왕님은 그 모습은 커녕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제 생각대로 용왕님은 없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나미가 짜증스럽게 차고 오르는 분을 이길 수 없는지 선 채로 발을 마구 구른다. 그러고는 신경질적으로 몸을 휙 돌린다.

 “ 어..?”

 일부로 요란하게 돌아선 나미의 몸이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크게 휘청인다.

절벽 끝에서 아찔하게 기우러지는 몸을 어떻게든 떨어지지 않기 위해 중심을 잡으려는 나미가 두 팔을 허공에 휘저었다. 그래봤자 절벽 가장 끝에 나미가 잡을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기어이 중심을 잃은 나미가 한 번 더 크게 휘청이더니 이내 소리를 지를 틈도 없이 순식간에 절벽 아래로 뚝 떨어진다.

 

 

 

 

 

 

 

 

 

 횃불을 하나씩 손에 쥔 마을 어른들이 각기 갈 방향을 정하는 동안 노지코는 여전히 발을 동동 굴렀다. 이미 해가 저버려 어둠이 내린지도 한참이었다. 하지만 아직 마을 어디에서도 나미를 찾지 못했다.  밤이 내려앉을 때까지 찾지도 돌아오지도 않는 나미를 사람들은 기어이 제 각각 횃불을 들고서 찾아 나서야만 했다.

 혹시라도 사람들이 마을 밖으로 나가있는 사이 나미가 돌아 올까봐 마을사람 중 일부는 마을에 남기로 했다. 노지코는 도무지 마을 안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수가 없어 모래사장 쪽으로 가겠다는 어른들 틈에 끼었다.

 1년 전 한순간에 엄마를 잃었는데 하나 남은 핏줄인 나미까지 잃을 순 없는 노지코는 짧은 걸음을 부지런히 옮겨 어른들보다도 훨씬 앞서 걸었다. 평소 같았으면 한참이 걸렸을 모래사장도 나미 하나만 생각하고 거의 뛰다시피 달리니 금방이었다. 모래사장에 도착하자마자 어른들은 곳곳으로 흩어져 부지런히 나미를 불러댔다. 노지코 역시 그 틈에서 누구보다도 간절히 나미를 불렀다.

 한참을 목을 놓고 나미를 부르던 노지코는 바삐 걸음을 움직였다. 그러자 갑자기 걸음을 우뚝 멈추더니 파도가 드나드는 물가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횃불을 든 어른들 덕분에 사방에 환했지만 파도가 드나드는 해변가는 밤이 눅눅히 내려 앉아 어두웠다.

 한참을 그 어두운 한 곳을 바라보던 노지코가 더 자세히 보기위해 이맛살을 찌푸린다. 그러더니 곧 놀란 얼굴이 되어서는 해변가를 향해 마구 달려간다. 파도가 드나드는 모래사장 끄트머리엔 나미가 파도에 반쯤 잠겨 누워있었다. 얕은 바닷물에 발이며 옷이 젖는 것도 마다치 않고 뛰어든 노지코가 파도를 온몸으로 맞고 있던 나미를 물 밖으로 끌어내려는 듯 일으킨다. 그러다가 제 힘만으론 쉽지 않은지 나미를 끌어안은 채 횃불이 일렁이는 쪽을 향해 소리친다.

 

“ 여기요!! 아저씨, 여기요!!!”

 

 그러자 온 사방에 흩어졌던 마을 어른들이 순식간에 노지코를 향해 모여들더니 쓰러져 있는 나미를 얼른 물 밖으로 건져낸다.

 다행히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뿐인지 물밖에 건져진 나미는 금세 먹은 물을 토하더니 걱정한 게 무색할 만큼 쉽게 눈을 떴다. 하마터면 하루아침에 큰일 치룰 뻔 한 노지코는 정신이 든 나미를 보고서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되레 나미의 등짝을 찰싹 때렸다.

 “ 대체 어디 갔었어?! 뭘 했기에 이 꼴이야!! 너 내가 얼마나..!!”

노지코는 속에서 터져버린 속상함을 버럭이며 토해냈다. 나미에게 화를 낼 일은 아닌데, 화 말고는 딱히 표현할 방법을 못 찾은 거였다. 하지만 나미도 그런 노지코의 마음을 아는 건지, 혹은 정신이 없어 그런 건지, 노지코가 대뜸 화부터 내는데도 울기는커녕 되레 힘없는 목소리로 미안하단 말만 했다.

 깨어나긴 했어도 우선은 나미의 상태가 걱정인 어른들은 얼른 마을로 돌아가자며 두 아일 달랬다. 그게 맞는 거였다. 밤이 깊었는데 여태 물속에 방치됐던 나미의 상태가 좋을 리 없었다.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 어른 등에 업힌 나미는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눈을 몇 번 껌뻑이거나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그러다 노지코와 눈이 마주쳐 다시 얌전히 업힌 등에 고갤 기댔다. 그러고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힐끗 눈으로 주변을 살핀다. 옆에서 나란히 걷는 노지코 때문에 대놓고 고갤 돌릴 수 없는 나미가 눈짓으로만 부지런히 주변을 살핀다. 그러다 제가 찾던 걸 발견했는지 한 곳에 시선을 고정한다. 나미가 찾은 곳은 다름 아닌 제가 떨어졌던 절벽언덕이었다.

 나미는 한참을 절벽언덕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표정은 멍한 채로 그 곳을 하릴없이 바라봤다. 멍하게 그곳을 쳐다보는 나미를 노지코는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결코 나미가 보고 있는 게 절벽언덕인지는 노지코는 알지 못했다.

 

 달이 구름에 가려 평소보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나미는 저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제 눈으로 보았던 것을 똑똑히 생각했다. 아주 잠시 스쳐지나가듯 보았지만 푸른빛에 반짝거리는 것을 나미는 절대 잊을 수 없었다. 결코 없을 거라고 스스로 믿었던. 그건 분명 용이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절벽언덕 끄트머리에 앉은 사내는 횃불이 일렁이는 모래사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곳곳에 흩어졌던 사람들이 결국 무언가를 찾은 듯, 이내 횃불을 든 채 한 곳으로 몰려든다.

 그걸 가만히 구경하던 사내는 작게 입 꼬리를 올렸다. 그러다 문득 등 뒤로 자박거리는 인기척이 들리자 잠시나마 머물렀던 웃음기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진다. 이윽고 사내의 등 뒤로 서너 걸음을 남기고 다가온 이는 어딘가 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무슨 바람이 불어서 용왕께서 한낱 인간 아일 구하셨는지 모르겠지만...”

“ ......”

“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그 말에 절벽 끝에 한량처럼 앉아있던 사내가 힐끔 뒤를 돌아본다. 용왕이라 불린 사내는 제 뒤에서 단단히 인상을 쓰고 선 시커먼 남자를 보고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 그 여자아일 구하셨잖습니까.”

정녕 모르겠다는 듯 너스레를 떠는 사내의 말에 남자가 분기를 애써 억누르는 얼굴로 따박따박 말을 이으며 두 주먹을 꾹 쥐었다. 하지만 사내는 되레 남자를 몰아세우 듯 말했다.

“ 내가 그랬다는 증거라도 있는지?”

“ 사보님!!”

 

뻔뻔하게 증거를 요구하는 소리에 더는 참을 수 없던 남자가 소리를 버럭 지른다. 그러자 절벽 끝에 고고히 앉아있던 사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이제는 자신을 노려보기까지 하는 그를 향해 슬그머니 몸을 돌린다. 사내가 몸을 돌리자 가려졌던 모습이 달빛에 훤히 드러난다. 사내의 피부는 희고 투명했다. 용왕이라 불릴만한 것이, 결코 뭍에서는 볼 수 없는 빛깔이 달빛에 비쳐 사내의 얼굴에서 반짝였다.

“ 명부에서는 그렇게 주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나봐?!”

형식적으로 웃어 보인 사보가 들으라는 듯 말을 비꼬자, 남자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뭐라 반박하고 싶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남자는 더는 그 쪽으론 입을 떼지 않으려는 듯 아예 다른 말을 꺼낸다.

“ 저 아이 어미는 죽게 내버려두셨으면서 왜 저 아이는 구하셨어요.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는 건 수신의 오랜 법도가 아니었습니까?”

남자가 다그치듯 언성을 높이자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남자를 보고 있던 사보가 결국 그 나무람에 질려버린 듯 슬쩍 미간을 찌푸리더니 시선을 돌린다.

 그러고는 고요하고도 잠잠한 바다 위를 지나, 멀리 시선을 옮긴다. 좀 전까지 사람들로 웅성이던 모래사장은 어느새 모두 마을로 돌아갔는지 조용하기만 하다. 주변을 밝히던 횃불의 작은 불씨조차도 보이지 않게 된 모래사장을 감상하듯 말없이 내려다보던 사보는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뗐다.

 “ 맹랑하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말에 남자는 선뜻 알아듣지 못해 인상을 썼다. 무엇보다 제 말에 조금의 답도 안 해 주는 그가 딴소리를 하는 게 남자는 마음에 차지 않았다.

“ 뭐가 말입니까.”

“ 뭍에서도 가장 위험한 바다 옆에 살면서, 그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 주제에 바다의 신 같은 건 없다고 하는 게.”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거만함으로 똘똘 뭉쳐진 그 말에 남자는 기어이 한숨을 내쉬었다.

“ 그게 보기 싫으셨으면 그냥 죽게 놔두지 그러셨어요. 용왕께서 괜히 관여하셔서 저만 곤란해졌지 않습니까.”

 남자가 손사래를 치며 이게 다 너 때문이다, 란 식으로 말을 하자, 가만히 듣고만 있던 사보가 돌연 피식 웃어버린다. 그러더니 좀 전과는 사뭇 다른 눈빛으로 남자를 쳐다본다.

“ 정말 곤란해졌을까.”

남자는 좀 전과는 확연히 다른 사보의 태도에 이번에야 말로 무언가 정말 곤란해진 듯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 염라께서 무슨 생각으로 자꾸 염탐꾼을 보내시는 걸까. 듣기론 이런 일 좋아하실만한 분이 아닌 것 같았는데.”

“ 무슨... 말씀이신지.”

 냉정한 목소리임에도 예의 웃음기를 잃지 않는 사보를 보며 남자는 애써 침착하려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하지만 더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해보여줄 생각이 없는 사보가 아예 불쾌한 내색을 얼굴에 드러냈다.

“ 깅이랬지, 아마.”

“ ......”

“니가 염라의 오른팔인 걸 내가 모를 거라 생각했나 보구나.”

 깅은 더 이상의 시치미가 별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딱히 숨길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알릴 생각도 아니었는데. 이미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보의 태도가 생각보다 날카로워서 깅은 왠지 웃음이 날것만 같았다. 그런 일은 언젠가 한 번 겪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제가 그 분의 오른팔인 건 맞지만, 염탐꾼이라니요. 무슨 오해를 하시는 겁니까.”

깅의 한결 누그러든 태도는 좀 전 보다 훨씬 격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의 예의 반듯한 태도에 사보도 조금은 적의가 덜어진 표정으로 마주봤다. 그래봤자 여전히 못미더운 얼굴이지만.

“ 여긴 우리 영역이야. 명부의 사자들이 일일이 허락 구해가며 올 수 없어서 물에서 죽은 영혼들 명부까지 직접 인도해주는 것도 우리 몫이지. 근데 명부사람이 영혼 거둬간답시고 이렇게 보란 듯이 들락거리는데 내가 이상하게 여기는 게 과연 오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사보가 명목요연하게 말하자 깅은 입을 꾹 다물었다. 받아칠 다른 변명거리를 찾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지만 그럴싸한 해답이 단박에 생각나지 않는지 입술만 질근거렸다. 그러자 어물정한 그 태도를 가만히 지켜보던 사보가 더는 기다려줄 용의가 없는지 다시 입을 연다.

“ 가서 염라께 전해. 내게 볼일이 있거든 직접 오라고.”

“ ......”

“ 내가 심해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그렇게 꼭 전해.”

그러더니 뒤돌아서 망설임 없이 절벽 밖으로 발을 내민 사보는 깅이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절벽 아래로 뚝 떨어진다. 눈앞에서 사람이 순식간에 절벽 아래로 떨어지자 잠시 흠칫 놀란 깅이 금세 안도하듯 한숨을 내쉰다. 고요했던 바다가 사보가 절벽에서 떨어지기 무섭게 통로를 만들 듯 크게 회오리치더니 금세 잠잠하게 사그라든다. 절벽 아래의 보기 드문 광경을 멀끔히 바라보던 깅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누군가 들으라는 듯 그런다.

 “ 어쩌실 거예요. 에이스님 때문에 저만 미움 받았잖아요.”

그러자 등 뒤로 우거진 나무 위에서 숨넘어가듯 웃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참고 있다 터진 웃음인지 한참동안 그칠 줄을 모르자 듣고 있던 깅이 버럭 소릴 지른다.

“ 어떡하실 거냐구요!!”

한참을 웃던 에이스는 그치기가 어려운지 그러고도 한참을 더 웃은 후에야 나무 위에서 풀썩 뛰어내리더니 절벽 끝에 서있는 깅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절벽 아래의 이제는 물길도 보이지 않는 잠잠한 수면 위를 빤히 내려다본다.

“ 어떡하긴 뭘 어떡해.”

“ 가시게요?”

“ 어디를?”

“ 따라 가시려는 거 아니었어요?”

분위기는 바로 따라 뛰어들 것 같았던 에이스가 깅의 물음에 되레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 저렇게 얘기하고 가셨는데, 염라께서 안가시면 체면이 뭐가 됩니까. 대체 어쩌시려고 이러세요?!”

깅은 답지 않게 안절부절 거리며 잔소리를 해댔다. 사보가 으름장 놓듯 직접적으로 전하라고 말했는데 에이스가 대처를 해주지 않으면 깅만 난감해지는 상황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깅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이스는 적막하고 고요한 수면 위만 주시한다. 그러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 성질 한 번 여전하네.”

 

 옆에서 울상이던 깅은 찰나의 그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들었는지 더는 앓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문 채 에이스처럼 절벽 아래의 수면 위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다 한동안 잊고 있던 무언가가 생각난 듯 조심히 입을 열었다.

“ 그 분도 사보님처럼 언젠가 환생하겠죠?”

“ 글쎄.”

 수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에이스의 답변은 깅에겐 조금 잔인하게 들리기도 했다. 생사를 관장하면서 깅의 물음에는 확답을 주지 않은 에이스였지만 사실 에이스 역시 깅이 말한 그 누군가의 환생여부는 확신할 수 없었다.

“ 염라께선 얼마나 기다리셨어요?”

깅의 또 다른 물음에 에이스의 건조하던 얼굴에 웃음기가 맺혔다. 글쎄,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가 환생하기까지 걸린 기다림을 가늠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시간들이 지나버렸다. 정말이지 셀 수도 없는 시간들이었다.

“ 나도 몰라.”

“ ......”

“ 근데 환생할거란 건 알고 있었어. 나미가 그랬거든.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고.”

에이스는 아주 오랜 된 옛날이야기를 하는 듯 말했다.

“ 그걸 여태 믿고 계셨네요.”

“ 나미가 환생하면 사보도 환생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나미는 수신의 신녀였으니까. 그 운명은 바꾸지 못해.”

“ 그래서 사보님이 살려두도록 놔두신 겁니까?”

 사색에 잠긴 듯 한참동안 절벽아래를 내려다보던 에이스가 깅의 갑작스런 물음에 힐끔 고갤 든다.

“ 뭐라는 거야.”

에이스가 이해하기 어려운 모호한 반응을 보이자 깅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미간을 잔뜩 좁혔다. 그걸 본 에이스는 이번엔 아예 보란 듯이 푹하고 웃었다.

 “ 사보 아니었어도 나미는 안 죽었을 거야.”

 그렇게 말한 에이스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내 웃음기가 그친 얼굴로 담담히 다시 말을 이었다.

 

  “ 평생 신을 위해 살았던 아이니까. 그 보상은 이번 생에 받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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